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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와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도시, 프랑스는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낭만의 세계를 이끈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이기에 예술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을까?
파리의 에펠탑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어버렸고, 누구나 프랑스를 여행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일순위 관광지가 되었다. 나도 언젠가 프랑스의 에펠탑에 갈 수 있다면 그 곳을 마음껏 여행하고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직접 간 나라들은 아니지만, 이 블로그를 작성하는 이유는 앞으로 내가 가고 싶은 나라에 대한 조사를 하는 차원도 있다. 이것을 통해서 나중에 프랑스를 여행하게 될 때 꼭 참고했으면 좋겠다.
프랑스는 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내가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를 프랑스어를 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프랑스어 시간에 우리에게 공부나 단어를 많이 외우게 하신 것 보다는 프랑스 문화를 주로 소개를 해주셔서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 우리반 남자아이들이 짖궂어서 선생님께서 꽤나 고생을 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선생님이 늘 안타까웠고, 정말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프랑스의 좋은 문화를 소개시켜주시려는 선생님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프랑스어 시간을 사랑했다.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과 입시에 치여서 늘 스트레스 속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프랑스어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프랑스의 낭만적인 문화를 알아가는 좋은 기회였고, 무엇보다도 그 시간을 좋아했던 이유는 프랑스 4대 뮤지컬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4대 뮤지컬을 보면서 뮤지컬에 대한 재미를 알게 되었고, 프랑스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뮤지컬로는 로미오와 줄리엣, 노트르담의 꼽추, 돈쥬앙, 십계 이렇게 4가지 이다. 그 중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뮤지컬은 정말 낭만적이었다. 오래 전에 보아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주인공들이 전부 예쁘고 잘생겼던 기억이 있다. 노트르담의 꼽추는 주인공 카지모도 역을 맡았던 배우의 분장이 너무 리얼해서 마치 진짜 꼽추로 느껴졌고, 꼽추의 사랑이 너무 안타까웠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돈쥬앙은 4명의 주인공들이 한국에 내한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음악프로그램에 나와서 돈쥬앙에서 나오는 주제가를 불렀는데 색다른 매력에 한동안 헤어나오질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십계는 매우 웅장하고 성경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그것 나름대로의 프랑스 뮤지컬만의 특성을 갖추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내가 만난 프랑스는 아름다운 뮤지컬처럼 기억되어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프랑스를 여행하게 된다면 프랑스어 뮤지컬을 꼭 보리고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지인도 유럽을 한달동안 여행했는데 맨 마지막 유럽 여행지를 프랑스로 정하였다고 한다. 유럽여행의 마지막 밤을 프랑스의 에펠탑 야경을 보면서 보냈다고 한다. 에펠탑의 야경이 주는 낭만적인 분위기에 취해서 원래 돌아오기로 한 예정일 보다 하루를 더 묵었다고 한다. 에펠탑의 밤은 어떨까? 그 아름다운 분위기에 취해서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프랑스를 방문하기 전 유명한 관광명소를 체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프랑스에 가면 꼭 가야할 관광지들을 소개하고 싶다.
1. 파리 에펠탑
앞서 말한 것처럼 에펠탑은 프랑스라는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원래 에펠탑을 세우려고 했을 때는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높은 건물들이 거의 없는 프랑스에서 거대한 철골 구조물들이 세워진다고 했을 때는 도시 미관을 망친다는 이유로 거센 항의와 반대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펠탑은 세워졌고, 한 동안은 흉측한 구조물이라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게 되고, 에펠탑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게 되면서 에펠탑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여행지 1위를 차지게 된다.
에펠탑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를 하자면, 먼저 에펠탑을 건축한 사람은 구스타프 에펠로 프랑스의 토목기사이다. 그가 작업을 했던 초기에는 철교들을 설계했었지만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린 1889년에 우리가 지금처럼 잘 알고 있는 파리 에펠탑을 건설하였다. 그의 업적으로는 파나마 운하의 공사에도 참여하였으며,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도 그가 내부설계를 맡았다고 한다. 그 만큼 세계의 유명한 건축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지만, 건축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프랑스의 많은 예술가들이 에팔탑의 건축에 대해서 거세게 반대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탄원서까지 제출하는 등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소설가 레옹 블루아는 에펠탑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한다. "진실로 비극적인 가로등" 이라고 말이다. 또한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은 "높고 깡마른 철사다리로 된 피라미드, 퀴클롭스의 거대한 기념물이 올려질 것처럼 세워진 기반 위에 공장 굴뚝처럼 서 있는 우스울 정도로 가는 뼈대" 라고 맹비난을 했다고 할 정도니 에펠탑에 대한 모욕과 비난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인 것 같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거센 비난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에펠탑은 꿋꿋하게 세워지게 되었고, 결국에 모든 공사가 끝나게 되자, 완공 된 에펠탑의 모습을 본 수 많은 예술가들이 세기의 기념탑이라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런 거센 비난을 이기고 세계의 아름다운 탑을 세운 에펠탑의 뒷이야기들이 조금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좀 더 찾아보았다. 에펠탑을 처음으로 공모하게 된 것은 1886년 5월이었으며, 당시 프랑스 정부는 1889년에 열릴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프랑스를 기념할 만한 300미터 철탑 설계안을 공모하게 된다. 16일이라는 짧은 공모기간 동안에 무려 백 개가 넘는 지원서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엄청난 경쟁률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지원서가 접수되었지만 탑을 공모한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에펠이 제출한 에팔탑을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조직위원회에서 제공해주는 공사비는 150만 프랑이었지만, 에펠탑을 건설하기 위해서 필요한 금액은 약 650만 프랑이었던 것이다. 실제로는 800만 프랑의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에펠은 승부수를 띄우게 된다. 그것은 바로 에펠탑을 건축하는데 드는 모든 비용을 자신이 충당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대신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향후 20년 동안 에펠탑의 임대수익이나 입장료 등의 모든 수익금은 자신의 회사에서 받는 것으로 계약을 하자는 조건이었다.
모든 건설이 완공되고, 만국박람회는 성공적인 개최로 성황리에 막을 내리게 된다. 당시 방문했던 사람들은 3200만 명이었고, 에펠은 800만 프랑의 수익을 얻게 된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지불한 모든 비용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의 모험정신이 없었더라면, 도전하고자 하는 용기가 없었더라면, 과연 지금의 에펠탑을 오늘날의 우리가 볼 수 있었을까? 어찌보면 그의 용기가 정말 감사하게 느껴지며 나 자신 스스로도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
에펠탑을 방문하기 전 영업시간을 미리 알면 좋을 것같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 30분에서 저녁 11시까지 운영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해가 길어지는 여름 시즌인 6월 15일부터 9월 1일까지는 오전 9시서 밤 12시 45분까지 운영이 된다. 입장료는 3층의 꼭대기지 가서 엘비이터를 이용하면 된다고 하니 미리 참고해두면 좋을 것 같다.
2. 몽마르뜨 언덕
몽마르뜨 언덕을 가기 전 반드시 들려야 할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랑해 벽" 이라고 한다. 이 곳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여진 사랑해 라는 말들이 있는 장소라고 한다. 어쩌면 이 앞에서 사랑을 고백한다면 최고의 사랑고백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나라들의 언어로 사랑해 라고 말해본다면, 제일 먼저 한국어로 "사랑해", 영어로는 "아이러브유", 프랑스어로는 "쥬뗌므", 중국어는 "워아이니", 일본어로는 "아이시떼루", 체코어로는 "뮬류떼베" 등 정도 이다. 세계의 어떤 언어로라도 사랑해 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참 예쁘게 들리는 것 같다. 뭔가 단어나 소리는 다르지만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이제 여기서 몽마르뜨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을 통해서 갈 수 있다. 몽마르뜨의 언덕을 끝까지 올라가보면 파리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파리의 전경을 더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언덕이었던 만큼, 몽마르뜨의 언덕을 실제로 가보면 거리의 예술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거리의 화가들을 지켜 볼 수 있다고 하니, 이곳에 가면 몽마르뜨가 주는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에 한껏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몽마르뜨의 언덕은 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고, 예술활동를 할 수 있었던 아지트였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반 고흐가 이 곳에서 예술 활동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반 고흐가 살았던 집이 있고, 특히나 가 즐겨 찾았던 레스토랑이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름하여 La Bonne Franpuette 라고 한다. 이 곳은 몽마르뜨의 대표적인 맛집으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 레스토랑은 이곳만이 주는 특유의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분위기 때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한다고 한다. 이 곳은 사크레쾨르 성당 옆 광장에서 약 십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다고 하니 나중에 몽마르뜨를 가게 되면 꼭 방문하고 싶은 레스토랑이다.
이쯤되면 반 고흐에게 영감을 준 몽마르뜨이기에 반 고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반 고흐는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이자 화가 중의 하나로 그를 좋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그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 라는 그림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밤하늘의 별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런 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것이다. 비록 그는 짧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그에게는 신에 대한 갈망과 믿음, 그리고 예술에 대한 정열적인 열정, 그리고 사랑이 있었다. 그가 그림을 그린 생애 동안 그는 단 한점의 그림만을 팔았고, 자신의 동생 테오도르에게 생활비를 지원받으면서 생활했을 만큼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그의 작품은 그의 사후에 인정을 받게 되면서 위대한 예술가로써 이름을 남기게 된다.
몽마르뜨 언덕에 가면 그의 그러한 흔적들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3.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
이곳은 웅장한 개선문을 중심으로 구성된 도로이다. 세계의 유명한 명품 매장들이 있는 곳이며 문화와 쇼핑의 핫플레이스고도 할 수 있다. 저녁이 되면 도로 양 옆의 가로수에 전등이 켜지는데 그 모습이 정말 낭만적이라고 한다. 이 샹젤리제의 거리는 평상시에도 아름다운 야경의 거리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그 아름다움이 배가가 된다고 하니, 연말에 샹젤리제의 거리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면 결코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곳이 상업적인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의 통치로 중심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에트왈 광장의 공사를 완공하였고 상젤리제의 거리는 파리 8구는 세계적으로도 아름답고 매혹적인 거리로 손꼽히는 곳이 되었다. 이 곳은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기도 하는데 이유는 바로 샤넬, 에르메스, 루이뷔통 등 명품 매장들이 즐비하게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4. 물랑루즈
내가 물랑루즈를 알게 된 것은 니콜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한 영화 "물랑루즈" 를 통해서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화려함의 극치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해준 영화였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뭔가 모를 낭만적인 사랑이 이루어질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주인공인 그는 소설을 쓰기를 원하는 작가지망생이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 본적이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는 사랑을 해본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예술가들의 있는 도시인 물랑루즈로 무작정 향하게 된다. 물랑루즈는 쇼와 향락의 도시라고도 할 수 있었다. 매일 밤 화려한 춤과 파티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돈 많은 사람들이 모두 몰려드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곳에서 그는 물랑루즈에서 일하는 샤틴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고급 콜걸이었다. 그런 그녀와 사소한 오해로 그들은 엮이게 되고 이내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배우로써의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이루어줄 후원자를 찾고 있었다. 마침 그녀가 배우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백만장자 백작을 만나게 되지만, 성공만을 바라보던 그녀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백작의 눈과 물랑루즈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몰래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그들의 사랑은 결국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고 백작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그녀를 온전히 소유하고자 하는 질투에 눈이 먼 백작은 그를 죽이려고 하지만 가까스로 그녀로 인해 목숨은 건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를 살리기 위해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는 질투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배우로써 데뷔를 앞둔 공연을 하면서 그가 나타나고 극적으로 함께 무대를 성황리에 마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공연이 끝나고 그녀는 쓰러지고 결국은 죽게된다.
이렇게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곳이 바로 물랑루즈이다. 물랑루즈의 뜻은 '붉은 풍차' 라는 의미로 처음 문을 열게 된 때는 1889년이라고 한다. 당시 캉캉춤이 이곳에서 유행을 했고, 대중화가 되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캉캉춤의 시작인 셈이라고 한다. 물랑루즈는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나중에 이 곳을 가게 된다면 꼭 긴바지를 챙겨가거나 입고가는 것을 권한다.
프랑스라는 나라는 나라 자체가 주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나라 전체에 가득한 것같다. 자유와 사랑의 도시, 그리고 예술의 도시인 프랑스, 언젠가 이 곳을 갈 때 나의 사랑과 함께 도시를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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